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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이론실무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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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03] 民國97年에 생각해 보는 韓民族의 共有된 記憶 <1부>

  1. 매년 삼일절에 ‘집단으로서’ 한민족이 공유하고 있는 기억은 무엇인가? 답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일제시대에 대한 모든 기준이 불명확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어떤 집단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매년 3월 1일이 되면, ‘집단으로서 우리 한민족’은 어떤 기억을 떠올리는가? 태극기, 류관순, 비폭력 만세운동, 일본 제국주의의 한민족 말살정책,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 ‘개인적으로’ 떠올리는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과 그 이미지는 대개 비슷할 것이다.

그러나 민국97년을 맞이하고, 민국100년(2019년)을 3년 남긴 이 시점에 이러한 파편화된 개인적 기억과 이미지만으로 결코 충분하지 않다는 본질적 의문에 이르게 되었다. 1919년부터 2019년까지의 100년의 시간을, 본래 百이라는 숫자가 갖는 가득 차 있는 하나의 완성으로서의 의미를 일정부분 성취하고, 이를 기반으로 더 높은 차원의 집단으로서 한민족이 누릴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의 새로운 100년의 역사를 시작하는 축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소위, 뉴라이트라고 하는 일본제국주의에 부역한 민족반역자들의 몇몇 후손도 직접 참여하고 있는 신보수주의 운동은 대한민국의 건국시점을 1948년 8월 15일로 만들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는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강압적 지배시기를 대한민국과는 완전히 무관한 시기로 만들려고 하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이다. 1948년 건국된 대한민국의 지상과제가 反공산주의를 추구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공산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경제적 힘을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했고, 이를 위해 전력을 다한 것(이른바, 산업화 세력)은 일제시기의 부역에 대한 면죄부로 작용한다는 것이 그 논리의 하나이다. (이 논리는 1948년 건국이후 지상과제인 산업화 세력에 반대하는 민주화 세력(내지 의지)은 일정부분의 당연한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으로 확장된다.)

이를 위해서 매우 구체적으로 일본제국주의에 저항한 집단적 민족저항의 독립운동시기를 폄하하려는 논리를 개발하는데, 이에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한 한민족의 문서인 헌법을 악용하고 있다. 그 구체적인 근거는 다음과 같다.

1919년부터 6차에 걸쳐 제정 개정한 헌법들이 모두 임시(임시 헌법, 임시 헌장, 임시 약헌)라는 용어를 사용하였고, 부칙에 임시헌법 및 임시정부의 효력은 광복 건국 후 1년 내에 끝난다고 명시하였으며, 독립운동 시기의 가장 중요한 문서인 건국강령에 복국기와 건국기로 나누어 중국 내 임정의 활동기간을 복국기로 규정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과 중국 등에게 임정 승인을 거듭 요청하였으나 실패하였고, 결국 1945년 11월 귀국한 임시정부는 정부로서의 지위를 포기해야 했으며, 해방 후 3년 동안 임정의 김구 선생 등이 1948년 1월부터 대한민국 건국을 격렬하게 반대하는 투쟁을 벌였다는 것이다. 또한, 1948년 헌법전문의 “대한 국민은 기미년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다”는 구절도 단순히 건국정신의 뿌리를 기리자는 의미에 불과하며, 이승만 대통령의 민국연호 사용은 한성임정을 조직하였고 상해임정의 초대대통령으로서 해체위기의 임정을 지켜낸 자부심의 표현일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다음의 근거를 통해서 결코 타당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헌법의 효력은 명칭에 임시나 정식이라는 것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공동체에 대한 정당한 의지와 국가운영 매뉴얼을 갖추고 있으면 성립하는 것이며, 복국기과 건국기는 독립운동의 기능적 수월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구분되어 있는 것이지, 복국기의 독립운동단체의 활동을 마치 무주지에서의 활동이나 건국기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활동으로 이해할 수는 없기 때문에, 부칙에서 임시헌법 효력의 광복건국 후 1년 내에 종료규정은 광복 후 독립운동의 의지를 계승하는 공화국의 설립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국제법적으로 정부승인의 여부가 국가로서의 성립여부에는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것이 통설임을 상기해야 하며, 대한제국의 주인이었던 고종은 1910년 한일병합조약을 통해서 주권을 포기하였지만 국민이 그 주권을 상속하였기 때문에 이는 무효이고 국민이 주권을 상속했다는 1917년의 주권상속론을 이해해야만 1919년의 삼일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김구선생 등의 주장은 남북분단이 이루어져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식민지배라는 민족모순이 분단모순으로 전용되어 이어지는 것을 반대한 것이지 분단국으로서 대한민국의 건국을 반대했기 때문에 독립운동가로서의 성과 또한 인정해서는 안 되며, 단일민족국가의 달성에 대한 의지를 폄하해서는 안 된다. 헌법전문의 독립정신과 재건국이라는 용어야말로 복국기와 건국기의 국가로서의 연속성과 규범의 정신적 지주로서 공화국을 연결하는 키워드가 되는 것이며, 이승만 대통령이 주도한 한성정부 또한 상해임시정부로의 활동의 연속성을 이어갔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규범의 연속성과 규범의 정신적 지주로서 공화국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도외시한 채 자신들의 편의적 의도대로 무엇 하나라도 일제시대와 단절시킬 수 있는 내용이면 들고 나와 자신들의 일제시대의 부역사실을 감추려고 하는 것이 과연 이성적인 주장이라고 할 수 있는가? 오히려 과거의 사실을 정당히 시인하고, 공동체에 대한 진정한 사과를 빌고 용서를 요청하는 것이 공화국 시민정신에 부합하는 것이 아닌가?

기성의 역사적 사실을 이렇게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는 불분명한 내용으로 만들고, 기존의 정당한 의미를 비틀어서 개념을 왜곡한 뒤, 집단적 판단의 기준을 불명확하게 만드는 것은 이들(민족반역자와 그 후손들)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이러한 비열한 수법에 침묵하거나 방관해서 안 되며, 그 정확한 의미를 부여하고 설명하는 작업을 이루어야만 한다.

 

(16년 3월 둘째 주에 2부가 업로드 예정입니다.)

 

총무간사 전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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